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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그리고 일상다반사

물건이 도착했다(Pat Metheny Group-Letter from home)

오늘 아침도 여느 아침처럼 컴퓨터로 쩨데에프 싸이트에 들어가서 뉴스를 보면서 죠리퐁 맛 나는
씨리얼과 슈퍼서 사온 식빵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아는 사람이 없어 찾아올 사람은
없고 혹시 소포가 왔나 하면서 까치발을 들고 복도를 볼 수 있는 구멍으로 보니 역시나 소포가 왔
더랬다. 소포를 뜯었는데 다 가져오지 못한 옷가지와 보내주시로 하신 밥솥, 햇반 몇개, 라면 이렇
게 들어 있었다. 밥솥 구경하려고 밥솥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설에 떡국은 못먹더라도 곰탕이라도
먹으라고 보내주신 다던 인스턴트 곰탕과 각종 국, 후리가케, 햇반이 더 들어있었고, 내가 커피를
사마시지 않고 끓여 가져가서 학원서도 마시려 보내달라고한 플라스틱 텀블러에도 후리가케나
양념 된장 같은 먹을 것들이 들어있었다. 기분이 짠했다. 못난 딸 먹으라고 밥솥과 그 작은 텀블러
에 꾸역꾸역 넣어주신 음식들이 그걸 보내신 부모님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저 물건들일 뿐이였지만 그 어떤 말보다, 어떤 편지보다 절절하게 보낸 사람의 마음을 말해주었다.
당장 갈 수는 없어도 그리고 물론 오랜 시간이 흐른뒤에나 갈 계획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언제던 갈
수있는 날 맞아줄 곳과 반겨주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찡했다. 내일 부터 설 연휴라해도 먼 곳에 있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기에 난 무덤덤 한데 설 저녁에 모여 만두국 드시면서 어릴적에 만두피 밀다가
칭찬에 기분 신나 하루종일 밀고 다음날 졸도해서 병원에 갔던 얘기를 하면서, 할머니 만두 좋아하는
내 걱정하실 부모님과 할머니께 죄스럽다.

학원에 다녀와서는 보내주신 양념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여봤다. 재료가 마땅히 없어 며칠전 마트
에서 생존하기 위해 먹으려 사온 누리끼끼한 감자와 파스타 해먹을때 뭔가 넣고 싶어 사온 양송이
버섯, 신기해서 사온 빨간 양파를 넣고 끓인 찌개는 보기에도 상당히 기묘했다. 특이한 조합이였지만
좋아하지도 않던 하얀 쌀밥과 먹은 찌개는 너무 맛있었다. 정말 행복했다.

*
지난 금,토요일엔 BVG가 파업해서 전철역은 다 닫았었고 거리에 버스 한대 지나다니지도 않았다. 한국
에서는 아무리 파업을 해도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어이가 없었다. 이사람들 일처리 하는걸 보며 저렇게
일해도 먹고 사는구나... 한국에선 저러면 짤릴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소포는 글쎄 아침 8시 25분쯤에
왔다. 느려터지다고 생각했던 독일에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을 한다는 것에 놀랬더랬다.
*
지금 내가 살고있는 방 부엌에는 지난달에 워낙 못먹고 살아서(처음 오고 2주간은 냉장고에 우유, 쨈
한병, 물 이렇게만 들어있었다. 지난달엔 맨빵에 자우어크라우트만 얹어 먹어도 행복해했다) 이사하고
 나서 한 맺힌 듯이 식료품을 사들였다. 찬장에는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간 간장등의 조미료와 올 때
가져온 미역
작은거 한봉지, 고추장, 이사오고 사재낀 파스타면 2키로와 토마토 페이스트 1.5키로, 냉장고엔 계란,
 양상추, 버섯씩이나 있다. 오늘 부모님이 보내주신 먹거리들도 찬장에 올려두니 그득하다.
텅빈 냉장고와 살아왔기에 가득한 찬장은 뿌듯하다.



Pat Metheny Group / Letter from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