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사용하는 권력은 이미 권력이 아니며 아무런 정당성도 없다.
그것은 권력세력이 아니라 폭력세력이다.
오히려 권력은 그런 폭력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있다.
권력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행동하는 그 순간에, 바로 그곳에 존재한다.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에서 -
시민을 짓밟고 방패로 찍어내리고 물어서 손가락을 절단한 알량한 공권력이라는 작자들
은 더 이상 권력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당성, 즉 명분을 잃은 권력이 권력
으로 행세 할 수 있을까? 대중들에게 권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까?
나는 확신하지 않고 늘 의문만을 던진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도구로 악용된다고 싫어하고 정의라는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증오한다. 그리고 나는
응원하고 있다. 그들이 옳다고 생각해서 일까? 정의도 선도 없는 나이지만 그 무언가가
나를 분노로 이끌고 다른 이들을 지지하게 한다.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신념도 믿음도 없이 희망하는 나는 가장 어리석은 자중 하나가 아닐까?
*
한나 아렌트의 책이 읽고 싶다.
한나 아렌트가 읽기 쉬운 사람도 아니지만 번역의 압박도 심해서 이 책을 제대로 읽었는가
에 대해선 확신 할수 없지만 이 문장은 내 마음에 깊이 각인 되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선 저 말이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다.
이 책도 짐 쌀때 챙겼던걸로 기억하나 공항에서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도로 집으로 가져가신 책. 동생 올때 가져오라 할까.
아... 내일 헌책방 구경이나 가볼까.
헌책방에서 카프카와 키에르케고르를 보고 침만 흘리다 왔다.
아직 내 저질 독일어로는 버거운 책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하이데거의 책을 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