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진실
개는 개의 조상으로 여겨져온 코요테·늑대·재칼과 함께 개속(―屬 Canis)에 속한다. 개과의 계통도를 보면, 약 4,000만 년 전에 나무를 타며 살았던 육식동물인 미아키스에서 키노딕티스, 키노데스무스를 거쳐 최종적으로 여우·늑대·재칼·개의 조상인 토마르크투스로 이어졌다. 개의 가장 유력한 조상후보는 늑대(Canis lupus)로, 본래 다양한 아종 및 지역에 따른 변종들을 유럽 전역, 아시아, 북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었다 (→ 색인 : 회색늑대).
앞의 문장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필자가 찾은 개의 기원이다. 개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복종하며 살아왔기에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도 불리 운다. 늑대의 일부는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밥을 얻어 먹으며 복종하며 살아가는 온순한 개, 다른 늑대들은 야생상태로 남아 인간의 것들을 넘보고 인간을 헤칠 위험한 늑대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혹시 이 사실은 아는지?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라서 무리 내에 규율의 확실하게 잡혀 있으며 같은 싸울 때는 이를 드러내지 않고 싸운다고 한다. 늑대는 인간의 것들 (목동들의 시각에서)을 넘보았기에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지 늑대 자체가 포악한 동물은 아니다. 다만 인간들이 자기멋대로 정의한 늑대의 이미지가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늑대의 이미지이다. 늑대는 자기가 속한 무리에, 개는 자신을 먹여주는 인간에게 복종하며 산다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이미지로 살고 있지만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 이제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이야기를 해보자.
주인공 이수현은 어릴 적에 자신의 앞에서 죽어가는(정확하게 죽임당하는) 어머니를 목격했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국정원 요원 강중호의 가정에서 자라게 된다. 2화 초반을 보면 강중호의 아내는 아이 입양이 개 입양하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라면서 이수현을 거부한다.
아이는 어머니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자신이 속할 곳은 없다며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2화 초반을 바로 지나자마자 강중호의 아내는 이수현을 아들로 받아들이고 강중호, 강민기, 어머니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회에 속하여 이수현은 자라난다. 가족들이 이수현을 진짜 가족처럼 여기며 잘해주었어도 이수현은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자기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걸 목격했다는 실체적 과거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는 죽었고 자신은 혼자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수현은 혼자라고 느꼈기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가족에 어울려 살기 위해 어릴 적의 개구쟁이 모습을 누르고 고리타분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남자로 자라난다. 이수현은 자신의 양아버지가 속했던 사회에 같이 소속되고 국가의 명령에 충성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수현은 어머니를 죽인 자를 보고 13년간 억제했던 자신을 트라우마로 인해 잃고 복수심으로 작전을 그르쳐 국정원에서 쫓겨난다. 억제력과 충성심을 갖춘 훌륭한 조건의 개가 흥분했기 때문에 개의 조직에는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이 속했었던(그리고 속했다고 믿었던) 사회에서 방출 당한다. 충성할 대상도 잃고 복수심만 남은 이수현은 복수를 위해 태국에 가지만 청방이라는 조직의 거대함에 짖이겨져 다시 돌아온다. 이런 이수현에게 정부장은 청방에 들어가 수사를 하라는 언 더커버의 임무를 주고 이수현은 이를 수락한다. 이수현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인간을 헤치지 않는 개의 사회에서 엄격한 규율이 있지만 사회적 행동은 자유로운 청방이라는 미묘한 공통점을 갖은 사회에 다시 속하게 된다, 속한 사회에 대한 충성심과 사명감이 아니라 복수심으로.
이 드라마에는 국가에 소속되어있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규율이 확실한 조직 국정원과 어느사회에도 속해있지 않고 유랑하지만 자신들안의 결집력을 위해 엄격한 규율을 가진 조직 청방이라는 두 개의 대비되는 조직이 나온다. 여기에 이 드라마의 제목인 개와 늑대로 비견해보자면 충성할 대상이 있는(국가) 국정원으로 표현되는 개의 무리와 속한 곳이 없이 유랑하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결속하고 움직이는 조직 청방은 늑대로 표현될 수 있겠다.
충성할 대상을 가진 개였던 이수현은 자신이 드러낸 이빨로 인해 늑대의 무리에 보내져 개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수현은 자신이 복수심을 지닌 개였다는 것을 기억상실로 인해 잊고 늑대의 무리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조직에만 충성하고 타자에게는 무자비 할 수 있는 한 마리의 완벽한 늑대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12화의 종반부에서 그는 자신이 늑대의 행동을 하는 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긴 하지만. 과거에 개로 살았던 이수현은 늑대와 개의 사이에서 제는 갈등하고 있다. 자신이 개의 사회에 속했었다는 것과, 늑대로 대표되는 청방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두 가지 사실로 인해 그는 이제 운명의 기로에서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을 자신에게 묻고 있다(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번역된 것이 일반적이지만 필자는 여기서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로 해석하고 싶다). 그리고 개와 늑대의 시간은 선택과 운명의 드라마이다.
지우의 생부가 마오이고, 마오가 조직의 명령으로 인해 이수현을 죽인것은 앞은 지우의 운명이고 후자는 마오의 선택이였다. 서영길이 청방의 정보를 넘기고 도피했고, 변동석이 이수현의 모친에 대한 정보를 팔았다는 그들의 행위에서의 선택으로 인해 이수현의 운명은 바뀌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는 이수현의 삶은 그의 선택이 아닌 운명 이였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변화를 준 것은 이수현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과 그 결과들은 이수현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이제 단연 복수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제 늑대의 행동을 경험해본 개는 오랜 세월 전에 자신의 조상이 억제했던 늑대의 야성을 조절할 수 있을지 아닐지,
자유로운 늑대의 생활에서 충성할 대상이 있는 개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아닌지 결정해야 한다. 과연 그와 그의 운명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족:
뒤집어 보자면 개는 자신이 충성하는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 타인을 물어 뜯을수 있고, 늑대는 오로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상대에게 공격을 한다.
이 개와 늑대 중에 누가 옳은 모습인가? 개는 과연 우리에게 이로운 존재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