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실 단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당신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지만 막상 만나면 당신의 사고방식에 질식
할 것 같고 답답해서 싫어했습니다. 당신이 사촌 오빠들만 이뻐한다고 짜증 내기도 하고 당신
에게 한 순간도 사랑 받지도 못했고 저 또한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당신으로 인해 슬퍼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입관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 이가 아프도록 악물어야만 했습니다. 상을
치르면서도 당신의 죽음이 아니라 언제나 강하고 단단한 어른이라 생각했던 분들이 슬픔으로
무너지는게 너무 슬프고 죄스러웠고 그걸 인정하기 싫어 피해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때는 어떤
감정도, 어떤 생각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2주전 제가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왔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뒤에서야 상황을 이해하시고 제게
아무 것도 못해준다며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과 집을 그리워 하며 언제던 떠날 수 있게 싸둔 그
보따리에 돈이 있다며 당신이 거동을 하기 힘들어 고모에게 봉투에 담아 제게 주라고 하신 일
이 생각났고 구덩이 속에 당신을 넣고 며칠동안 있었던 일들이 현실이라고 확인 사살하려는 듯
매정하게 흙을 덮는 사람들과 기계를 보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도 눈앞을 가리는
슬픔들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당신을 사랑해서 운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감정이였는지 아직 제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까닭은 모르지만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는 원망하고 미워 할 일들이 없겠군요.
시간의 차이인지 아니면 기질의 차이인지 상을 치르는 사촌오빠를 보며 저와는 다르다고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원망하고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 눈물 흘리고 이제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으려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주신 오만원을... 그 당신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서 당신의 아들
만큼은 꼭 행복하게 하겠다는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게 하도록 노력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당신이 어디에 계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에 어떻게 지내시던지 예전에 그랬듯이 당당한 모
습으로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꼭 행복 하셔야 해요.
그리고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