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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청승고백

내 남의 나라 육첩 방을 미친 듯이 청소하며 청승고백을 들었다. 정리가 끝나고는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처음 날개를 접을 때 그 잊을 수 없는 기억 패배를 안 거야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지 절망의 언젠가 끝이 있다고
지금도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아무도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다시는 오지 말기를 그토록 원했어도 대답은 없고
이제 너는 가고 내 역겨운 시도 바칠 순 없지만

지금도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널 기억 하네
아무도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널 기억 하네
아무도 그 말을 믿을 사람 없어 조용히 하길


가사가 덮어두었던 내 기억을 파헤쳤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두고 왔다 생각했던 24년에 묻어
 있는 내 패배, 내 상처에 대한 기억들. 달의 궁전을 읽으면서 나를 먹여살려주는 부모님이 없었다면
나 또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표면적으로 우울해 했던 건 고등학교 다닐 적이었지만 내 20대
 초반은 쓸쓸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늘 절망 했었고 내게 허락된 곳은 학교 도서관 열람실 한 자리 뿐 이였다.
청승 고백을 처음 들은 건 열아홉 살-스무 살 무렵이지만 콘서트에서 청승고백을 듣고 난 어느 날 부터,
이십대 초반을 겪으면서 이 노래는 내 가슴에 낙인처럼 새겨진 상처에 기막히게 들어맞아 내 상처를
 덮으며 날 위로했고 아귀가 떨어지는 모양새로 세밀하게 찌르며 날 아프게 했었다. 물론 지금 나는
아직 이십대 중반이고 인생을 다 산 게 아니라 뭐라 할 수 없지만 나는 멍하니 앉아 내가 이십대 초반에
 느꼈던 패배감과 절망을 떠올렸다. 초반을 절망하고 언제나 나를 향해 칼을 들고 스스로를 흥건하게
자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패배가 두렵다. 패배의 전, 패배의 그 맛과 패배의 잔향, 후유증...
어린 친구랑 얘기해 보니 아직 어려서 내가 늘 안고 있는 두려움 같은 게 없었다.
패배도 성취감도 겪어본 자만이 아는 걸까. 난 자학하고 절망하면서 스스로 나를 망치고 싶어 했었기에
실패가 두렵고 무섭다. 지금 나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멋들어져 보이는 곳을 지나고 있지만 사실 여기는
 아주 높은 외줄 위다. 난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아슬아슬 서있다.

난 그저 저 위에서 햇빛을 반사해서 잠시 반짝였던 거야. 넌 멀리 있어서 그 빛과 열을 정통으로 맞아
일그러져 있는 내 얼굴을 못 본거야. 지금 난 너무 많은걸 걸었고 큰 판이기에 내가 서있는 외줄 위에선
내 괴로움과 상념이 나를 짓누르고 저 아래에는 나를 파먹으며 나와 함께 자라 온 패배와 상처가 날을
세우고 날 찌르려 준비하고 있어. 저 아래에 있는것들을 알기에 난 무섭고 두려워.
닥쳐, 그 말은 역겹고 내게 상처가 될 뿐이야. 아픔은 수치로 잴 수 있는 게 아냐.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진 마. 내가 널 모르듯이 너도 날 몰라. 그러니까 가증스럽게 말하지 말고 제발 닥쳐주길.

이 아저씨는 가사를 어찌 이리 쓰는지... 옹의 가사는 루시드폴 처럼 시적이고 문학적이지 않다(이 둘은
 내가 좋아하는 작사가들이다). 옹의 가사는 늘 스쳐가는 -너무나도 일상적이기에 의미를 두지 않고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캐치하여 노래한다. 솔직하게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일상의 언어로 노래하기에 그 어떤 말보다 마음에 와 닿는다. 옹의 가사는 그래서 아리고 위로가 된다.
이런 옹을 난 흉보면서도 좋아할 수 밖에 .
옹... 새 앨범 기다릴게요. 언젠가 먼 훗날 한국에 갔을 때 공연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이십대 초반에 내가 언니네 이발관의 공연을 다녔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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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안되던 동안 컴퓨터로 가계부를 쓰면서 일기도 쓰고 할일이 그닥 없다보니 글을 제법 썼다.
이것도 인터넷이 안되던 동안 적었던 글이다.